2023년 연간회고

목차

들어가며

한동안 블로그 글이 뜸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회고를 거의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지금까지의 제 모습을 솔직하게 돌아보고자 합니다. 개발자를 꿈꿨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엇이 잘못됐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부터

어릴 때부터 기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술에 관심 많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전자기기나 소프트웨어를 알게 되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일쑤였고, 잡지나 TV를 통해서 정보들을 조금씩 찾아나갔습니다.

Uplink Game

개발과의 첫 인연은 '업링크'라는 게임이었습니다. 해커가 되어 은행의 돈을 훔치거나, 주요 국가 시설을 사보타주하는 게임이었는데, 그때는 해커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짧은 지식으로 어떻게 해커가 될 수 있는지 찾아보고, 간단하게 OS를 설치해 보거나 다양한 툴들을 만져 보곤 했습니다. "해커가 주인공인 게임을 하는 것"과 "해커가 되어서 활동하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하지만, 당시에는 컴퓨터를 잘 하면 이런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Kali Linux

처음 설치했던 운영체제는 데비안 계열의 '칼리 리눅스'였습니다. 설치만 할 줄 알았고 사용 방법은 몰랐기 때문에, 이런 운영체제들을 설치할 때마다 롤백하는 것은 늘 컴퓨터 기사님의 몫이었습니다. 우분투나 CentOS 같은 운영체제도 설치해 봤지만, 설치만 하고 깊게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남들이 잘 모르는 걸 알면서 그걸 멋있어하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컴퓨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C언어를 배우게 되었고, 이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개발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가진 개발에 대한 재능은 미미했습니다. 포인터 개념에서 좌절했고, 결국 재수강을 통해서야 C언어의 기본을 이해했습니다.

이후에도 명확한 목표 없이 파이썬, 웹 개발(HTML/CSS), 데이터 분석을 위한 R, 앱 개발을 위한 스위프트 등 다양한 기술을 맛보기식으로 접했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간만 보다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2023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023년의 여정

그렇게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상태로 2023년을 맞이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어떻게든 따라가면서 얻어낸 학사 학위뿐이었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 뻔했고, 정말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죽을 것 같았기에 다시 한번 열정을 불태워 보려 했습니다. 그렇게 부트캠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멋사와 함께한 상반기

부트캠프를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에 부트캠프에 대한 환상도 있었고, 천성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부트캠프를 선택했습니다. 처음으로 자기소개서도 작성하고, 아이패드로 자기소개 영상도 찍어보았습니다. 자기소개서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기초적인 개념 테스트조차도 수월하게 해내지 못했지만, 다행히 합격 메일을 받게 되었습니다.

Likelion Mail

4개월간의 프론트엔드 부트캠프였는데, 시작은 순조로웠습니다. 연초의 새로운 마음가짐과 함께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함께 하는 동료들이 모두 열정에 가득 차 있어서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했습니다. 스터디에도 참여하고, 필수가 아니었던 특강도 꼬박꼬박 챙겨 들으며 열심히 달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나태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자 들어갔던 스터디에서는 공부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자신을 발견했고, 필수 과제 외의 선택 과제는 점점 등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종 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나태함이 극에 달해, 수업 시간에 줌만 켜 놓고 유튜브를 보거나 다른 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노션에 있는 교안 보고 복습하면 되겠지', '내가 그렇게 못하는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들이 점점 머릿속을 채워갔습니다.

최종 팀 프로젝트가 시작하기 직전에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물론 이것마저도 잠깐의 각성에 불과했습니다. 정신을 차린 이유는 단순히 팀 프로젝트에서 빌런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주어진 디자인과 서버 API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구현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이 한 달 동안은 다시 어떻게든 해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부딪히며 울며 겨자 먹기로 프로젝트를 완수했습니다. 거의 3주 정도는 평소에 자던 시간의 두 배 가까이 줄여가며 프로젝트를 했지만, 그런 모습이 자랑스럽거나 떳떳하지는 않았습니다. 열심히 한다, 잘 한다의 척도가 밤을 새는 것이 아닐뿐더러, 그렇게 밤을 새운 것조차도 프로젝트의 규모가 크거나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동안 쌓아뒀던 부채를 해결하느라 그랬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는 무사히 끝마쳤습니다. 팀원들 모두가 소신이 있고 똑 부러지는 분들이라, 혹시 직설적인 피드백이 오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다들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었습니다. 4개월간의 부트캠프 여정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성공 혹은 실패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실패였습니다. 부트캠프의 질이 아니라, 제 태도가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붕 떠버린 하반기와 우테코 프리코스

부트캠프가 끝나고 최종 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팀원들과 리팩토링을 시작했습니다. 코드를 정리하고, 프로젝트 시작 시 도입하지 못했던 기술 스택들을 도입해 보자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리코일과 리액트 쿼리를 도입하기로 했었는데, 결국 최종적으로 도입한 것은 리액트 쿼리였습니다. 그러나 팀원들 중 유일하게 리액트 쿼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손이 가는 대로 코드를 적용한 것은 저뿐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Jeju Web Conference 2023

새로운 경험을 찾다가 제주도에서 열리는 웹 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웹 접근성을 주제로 발표했는데, 한 달 동안 웹 접근성에 대해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겠다는 제 목표는 점점 흐릿해졌습니다.

이후 멋사에서 만난 동료들과 위치 기반 소셜 서비스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이 역시 몰입하지 못했습니다. 회의 때마다 완료하기로 한 계획은 계속 뒤로 미뤄졌고, 프로젝트 시작 한 달 후에 동료에게 이와 관련해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원인은 역시 "간절하지 않았다"입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우아한 테크코스의 프리코스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아한 테크코스 프리코스는 4주 동안 주어지는 미션들을 매주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무언가에 진정하게 몰입하고 싶었고, 스스로의 문제 해결 능력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신청했습니다. 1주 차와 2주 차 미션은 무난하게 진행했지만, 3주 차 미션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제출 이후 코드 리뷰에서 많은 피드백을 받아 "내가 정말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제 4주 차 미션을 앞두고 있는데, 설레는 마음보다는 걱정이 더 앞서고 있습니다.

실속 없는 2023년을 돌아보며

2023년을 이렇게 보내면서, 이러다가는 정말 답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자 이 회고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무기력하게 2024년을 맞이할 것 같아서입니다.

돌아보니 발견한 문제점

문제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문제를 돌아보기보다는 회피하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이번 회고를 통해 돌아본 후, 제 문제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나태함

그때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고, 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나간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갓생"을 사시는 분들이 새삼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렇지 못했고, 의미 없이 보내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2. 명확한 목표의 부재

돌이켜보면, 제가 개발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였습니다. 그 외의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 중에도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목표가 없었기에, 어떤 일을 해도 쉽게 길을 잃고 좌절했습니다.

3. 잘못된 공부 방법

개발은 둘째치고, 단순한 기술 블로그 내용을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제 공부 방법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회고를 작성하기 위해 검색하다가 "개발자 공부, 어떻게 해야될까요?"라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 최악의 공부 방법 예시에 제 방식이 그대로 적혀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개선 방향

문제를 파악했다면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나름 고민해 보았습니다.

1. 기록하기

사실 회고를 쓴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을 오늘 처음 겪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돌아본 후 해결책을 찾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자연스레 해결될 줄 알았지만, 잊히기만 했을 뿐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자주, 더 꼼꼼하게 기록할수록 더 많이, 더 깊게 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명확한 목표 설정하기

제가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였지만, 이제는 그 "멋있음"을 다르게 해석하고자 합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여러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개발하고 유지보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부하며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리고 저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웹 서비스를 통해 해결하여, 웹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경험과 순간들을 제공할 수 있는 멋있는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거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실 세계의 문제"라고 하면, 세계 평화나 지구 온난화 같은 거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작고 단순한 것들도 현실 세계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간편하게 은행에 가지 않고도 송금하거나, 영화를 예매하는 것,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외출 전 날씨를 확인하는 것 등이 모두 현실 세계의 문제를 웹에서 해결하는 예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멋있는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3. 효과적인 공부 방법 도입하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공부를 잘못된 방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학문적 탐구'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론을 실전에 적용해야 합니다. 결국 이론과 실전 모두 중요하며, 두 가지를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남은 올해의 계획

벌써 연말입니다. 날씨는 추워졌고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입니다. 올해의 제 행보는 우테코 프리코스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지원서에도 있었던 질문처럼, 우테코와 함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고민해보았습니다.

평소에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테코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합격보다는 불합격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 이후 계획을 세우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또한 언제까지나 외부에 의존해서 공부할 수도 없습니다.

우테코 불합격 시 계획

1. 진행 중인 사이드 프로젝트 마무리하기

먼저 진행 중인 사이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는 우테코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완료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회고는 이번 달 말부터 기록할 예정입니다.

2. 이력서 작성하기

이력서는 진작 작성했어야 했지만, 계속 미루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껴 더 준비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시간도 활력도 동기도 충만한 미래의 꿈같은 시간을 기다리다가는 평생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 백번 양보해도, 결국 막판에 해치워야 하는 스트레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완벽한 타이밍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완전히 받아들이자."

-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

역량 부족을 이유로 이력서 작성을 미룬다면, 결국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다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력서를 작성하지 않는다면 제가 목표를 향해 얼마나 왔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면접 준비도 함께 진행해야겠습니다.

3. 개인 프로젝트 진행하기

앞서 말한 대로, 학문적 공부와 실전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기 위해 제 역량을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합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무엇을 만들지는 아직 고민 중입니다.

마무리: 회고를 회고하기

처음으로 작성해 본 연간 회고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미흡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면 노력이라도 해야겠지요. 연간 회고를 작성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올해도 그냥 흘려보냈을 것입니다.

벌써 겨울이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이번 겨울은 제법 오래갈 것 같습니다.